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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핵 포기 없는 北, 어떻게 봐야하나
기사입력 2020-09-21 07:00:12   폰트크기 변경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로 알려진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심층 인터뷰 및 김정은의 친서 내용도 담아 주목을 끌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대화나 서신에 드러난 북한의 속내는 적나라하다. 트럼프의 개인 성향에 맞춰 아첨 섞인 표현으로 북미 정상 간의 개인 친분을 과장하고 정작 핵문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했다. 심지어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참수한 뒤 시신을 전시하는 잔인함을 과시할 정도로 김정은의 북한 내 절대 권위를 트럼프가 믿도록 애썼다. 자신과 약속한다면 북한 측의 이행은 문제가 없다는 비정상적 표현이다.

 

 북한은 형식적 만남에 그친 북미 정상회담과 친서 교환을 통해 미국과 대등하다는 이미지를 연출 했다. 트럼프의 즉흥적 결단을 유도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시키고, 종전선언을 앞세워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를 푼 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거나 적어도 묵시적 용인을 받아내겠다는 생각에서다. ‘핵무기 실험이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중단이라는 우리의 선심에 미국이 화답할 의향이 없다면 언제든지 전쟁할 준비가 돼 있다’라는 것이 북한의 기본 메시지다.

 

 최종적이며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FVID)를 위한 단계적 상호 조치의 구체적 일정표를 작성하기 위한 북미 실무회담을 북한이 한사코 기피한 이유는 핵을 포기할 의향이 없기 때문이다. ‘격노’에서는 트럼프 미 대통령도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마치 집에 애착을 가진 집주인이 집을 팔지 않는 것처럼 북한은 핵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코 협상을 통해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 상황이 그렇다면 그 동안 우리가 남북관계에 대해 공식처럼 되뇐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북한 핵 문제 해결은 비논리적이다. 북한의 대남 적대 정책 기저에는 한국이 발전시킨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개방된 사회의 우월함이 북한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깔려있다. 북한 기득권층이 특권과 사적 이익에 마비돼 버린 북한체제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과장하고 체제에 대한 과대망상으로 주민을 기망하기 위해 미국에 직접 대적하고 핵무기에 집착한다.

 

 북한 지도부의 합리적 선택은 과거 중국이나 베트남, 심지어 쿠바까지도 받아들였던 체제 개혁과 개방일 것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겉으로는 김정은을 정점으로 ‘받들어 모시는’ 척하면서 하층 간부부터 상층 지도부까지 북한의 권력엘리트는 이권과 특권을 움켜잡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변화를 통한 경제 발전이 아니라 체제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생존을 지향한다. 김정은 혈통에 대한 맹목적 숭배와 외부세계에 대한 적대감과 피해의식을 버무린 주먹구구식 경제정책으로 연명할 뿐이다.

 

 핵을 내려놓을 생각 없이 미국과의 투기적 흥정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북한을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현 정부는 북한의 현실보다는 핵문제 및 남북관계에 대한 비현실적 낙관에 근거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남북한 및 북미 간의 정상회담을 매개로 하여 탑-다운(top-down) 방식의 교감 속에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해 주면 북한은 핵을 내려놓고 남북관계도 풀릴 것이라는 낭만적 접근이다.

 

 북미 교섭이 중단된 상황에서 가속화된 북한의 핵무기 역량 강화와 실전 배치가 초래할 외교 및 안보 환경의 부정적 전개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우리 측 호의에 대한 북한 당국의 호응을 기대한 나머지 북한 주민이 겪는 인권 상실과 경제적 희생 등 민족의 비극은 뒷전으로 밀렸다. 북한 주민만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극단적 진영 논리로 분열하고 증오심으로 결집해 상대 진영을 정책 경쟁이 아닌 맹목적 투쟁 대상으로 적대시하는 퇴행의 정치 문화 역시 남북 분단 구조가 초래한 기형적 현상이다.

 

 대북 유화정책의 효과에 관한 아전인수 격의 논리에 함몰돼 북한의 핵무장 강화와 북한 주민의 희생을 외면하는 것은 진영 정서에 이끌려 북한을 바라보는 편향된 자세다. 11월 미 대선에 사활을 건 트럼프의 근시안적 한반도 정책과 국가주의를 앞세운 중국의 역내 패권 추구 틈새에서 줄타기하며 행여 그들이 남북관계에 도움 주기를 바라는 것도 나약한 외교 자세다. 그들이 남북관계의 앞날을 걱정할 리 없다. 북한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 마당에 북한 당국의 긍정적 반응을 기대하기보다 차라리 우리 안전과 북한 주민의 인도적 위기 해소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차분히 북한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오 승 렬 한국외국어대 국외교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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