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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육영수 피살 책임 DJ 추종자들에게 돌려... 獨 외교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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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04 08:31:23   폰트크기 변경      
연합뉴스, 서울대 성상환 교수 발굴한 구동독 외교문서 입수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고(故)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책임을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에 돌리려 했던 정황이 구동독의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연합뉴스는 4일 성상환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 교수(서울대 규장각국제한국학센터 소장)가 독일 외무성 정치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구동독의 1974년 외교문서를 입수했다.

2000년대 중반에 기밀 해제됐으나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던 이 외교문서에는 김일성이 북한의 소행으로 발표된 남한 영부인 총격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었는지 잘 드러나 있다.

김일성은 1974년 10월 25일 북한주재 신임 소련대사 글레브 크리울린에게 신임장을 주며 2시간가량 환담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장충동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지 두 달여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김일성은 크리울린 대사에게 한반도 긴장 상황 등으로 소련 방문이 여의치 않다면서 대남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김일성은 당시 “남조선은 박정희에 대한 암살 시도를 조선(북한)과 연계하려고 시도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개인에 대한 테러는 거부한다. 남조선에서 진행되는 사안에 있어 근본 원인은 박정희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파쇼적인 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테러범 문세광은 아마도 남조선을 지지하는 한인단체인 민단(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좌익에 속한다”며 “이들은 일본에서 납치된 남조선의 반대파 정치인인 김대중을 추종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당시 남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됐던 일까지 거론하며 일본 내 DJ 지지자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1974년 사건 직후 한국의 특별수사본부는 ‘북한 공작원 문세광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에 포섭돼 북측 지령을 받고 서울에 잠입, 범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한 바 있다.

김일성은 남측의 수사결과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을 넘어 사건의 배후에 마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의 거짓 주장을 편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5월 13일 방북한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에게 “(육영수 여사 저격 및 박정희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은) 하급자들이 관련된 것으로,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북한이 사건 28년이 지나서야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한편, 김일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72년 유신 선포 이후 남한 내 비등하던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조선(북한)은 단지 남조선의 매판 자본가들과 민족 반역자들에 대해서만 반대한다”며 “다른 나머지 세력들과는 과거에 대해 묻지 않고 함께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남조선은 조선이 혁명을 수출한다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조선도 소련도 중국도 하려는 바가 아니다”라며 “남조선의 신앙인들과 학생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다. 남조선 당국의 탄압은 저항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이런 대화 내용은 환담 나흘 뒤인 1974년 10월 29일, 북한주재 소련대사관의 피메노프 공사가 평양의 동독대사관에 들러 프란츠 에버하르츠 동독대사에게 알려주면서 외교문서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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