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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내몰리는 건설현장 안전관리자
기사입력 2020-10-15 06:00:11   폰트크기 변경      
정부·지자체 각종 서류 요구 ‘야근일쑤’… 사고 땐 처벌규제 강화

 

#경기도 소재 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근무하던 안전관리자 A씨는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안전공학을 전공하고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매일 서류 작업에 치이기 일쑤였다. 정부와 지자체 등의 안전점검을 받기라도 하면 일상업무에 각종 요구 서류까지 작성하느라 퇴근시간은 자정을 넘겨야 했다. 특히나 사망사고로 인해 안전관리자가 구속되는 등 처벌 소식을 접할 때는 ‘좌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제조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동기에 비해 낮은 연봉과 열악한 근무여건, 현장 채용 계약직(PJT)이라는 신분을 모두 고려한 그는 마침내 현장을 떠났다.

 

범정부 차원에서 건설현장 안전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사고예방 최일선에 있는 안전관리자들은 현장을 떠나고 있다.

근로여건 등 현장 실정을 반영하지 않는 입법과 사고 발생 시 과도한 처벌 등이 안전업무 담당자들을 밀어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각종 공사현장 안전관리자들의 유입은 줄어들고 타 산업으로의 이직을 위한 퇴사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토교통부를 포함, 정부와 국회의 사망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 강화 입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것이 건설안전특별법으로, 이르면 연내 국회 통과가 점쳐지고 있다.

정의당의 핵심 과제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힘을 보태기로 하면서 사업주 및 안전관리자의 책임과 부담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도, 안전조치 위반으로 근로자 사망사고 발생 시 관련 책임자는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대형건설사 안전보건팀 관계자는 “건설현장 사망사고 발생시 대표적 책임자는 현장소장과 담당 안전관리자”라며 “건설안전특별법이 시행되면 해당 건설사 CEO의 처벌과 건설사의 등록 말소까지 가능해지기 때문에 현장 일선 안전관리자들은 책임에서 더욱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난 4월 건설안전 혁신방안의 일환으로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ㆍ시행규칙 역시 안전관리자들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개정안은 건축공사의 안전 강화를 위해 상주감리 대상사업을 확대하고, 안전관리를 전담하는 감리원(안전감리원) 배치를 골자로 한다.

강부길 한국안전보건기술원 대표는 “건설안전 관련 경력이 전무한 건축사사무소 소속 감리원이 현장 안전관리에 관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규제 영향 분석에 따라 2500여명의 안전감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인력을 수급하는 것은 물론,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따라다닐 것”이라며 “국토부가 최근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른 안전관리를 강화하면서 현장의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관리자들은 이보다 심각한 것은 처우와 고용 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 건축공사현장 안전관리자는 “옥외 근무를 기본으로 하는 건설현장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현장보다 근무 여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이 PJT(현장채용계약직)로 고용하는 구조여서 안정성이 떨어지는 데다 연봉마저 타 업계 대비 높지 않은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건설현장 안전관리자는 프로젝트별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활용해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사 직속 정규직 안전관리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에서야 현대건설이 2025년까지 1000명의 정규직 안전전문가를 확보하겠다고 하는 등 일부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안전관리자의 정규직화가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평가액 기준 상위 100대 건설사들의 안전관리자 정규직 비율은 37.2%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을 통해 건설사업 안전관리자 선임대상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 공사비 120억원 이상 건설공사에서 의무화된 안전관리자 선임이 올해 7월부터 1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됐다. 내년 7월부터는 80억원 이상으로, 2022년 7월에는 60억원 이상, 2023년 7월에는 50억원 이상으로 늘어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재 의무 선임 기준에 따른 안전관리자 채용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채용인원을 늘린다지만 실제 건설업 취업 희망 안전관리자는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성중기자 kwon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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